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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김일성大 합격생의 '대입' 경험담
이름 운영자
작성일 2004-02-22 조회수 2195
김일성大 합격생의 '대입' 경험담

북한의 각 대학에서는 3월 초 일제히 '대학입학시험'을 치른다.

중학교(남한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졸업반 때 대학추천 대상자를 선발하는'실력판정시험'에 합격해야만 대학 추천 자격이 주어지며, 이를 통과한 학생들은 자신이 추천된 대학에서 2~3일간 '본고사'격인 입학시험을 치르게 된다.

시험을 하루에 다 치러 성패를 결정하는 남쪽과 달리 고등고시 시험을 보듯 며칠 동안 시험을 치르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시험 당일 아침, 합격을 기원하는 '찰떡'을 먹고 부모들과 친구들이 교문 밖에서 용기를 복돋워주는 모습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똑같다.

북한의 최고 명문인 김일성종합대학 수학역학부 1학년에 재학중인 리철현 학생이 1년 전 자신이 겪은 대입 경험담을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월간 '조국' 3월호에 털어놨다.

『기쁨의 계절인 3월의 봄을 불안과 기대의 착잡한 심정으로 맞게 되는 사람들은 바로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게 되는 수험생들이다. 어떤 사람은 수험경쟁을 이겨내고 대학에 입학한 날 일기장에 '인생의 사변적인 날'이라고 썼다는 데 이것이 지나친 표현일까. 아마도 수험경쟁을 치러본 사람들은 이 말에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내가 김일성종합대학에 추천받은 것은 지난해 2월 말이었다. 우리 조국의 최고대학에 아직 입학은 하지 못했어도 추천을 받은 사실만으로도 부모들의 기쁨은 한량없었다. 그 때로부터 한 주일 후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찾아가 수험표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다음 날은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철현아, 옛날에도 과거보러 가는 사람들은 찰떡을 먹고 갔다더라. 그래야 찰떡처럼 잘 붙는다고..." 웃으며 하는 어머니의 말이었다. 부모들과 동생의 믿음에 찬바래움(배웅)을 받으며 일찍이 대학으로 떠났다.

오전 9시 수험장 문이 열리며 2명의 시험관들이 들어섰다. 머리가 희슥희슥(희끗희끗)한 교원이 시험과정에 유의해야 할 문제들을 알려주고는 첫 시험문제를 불러주었다.

첫 시험은 수학이었는데 시간은 90분이었다. 제시된 8개의 문제를 보니 몇 문제는 자신이 없었다. 자신있는 문제들을 다 풀고나니 어려운 문제들만 남았다. 풀리지않는 한 문제를 놓고 씨름하다가 좌우를 둘러보니 수험생들 모두가 머리를 수그리고문제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점차 나는 조바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학, 화학, 물리, 외국어 등 6개의 시험과목 중 어느 한 과목이라도 점수를 낮게 받으면 입학기준 점수에 도달하기 어렵게 된다는 말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험지를 여러 장이나 소비하면서 수학지식을 다 짜내여 문제를 풀어나갔다.

시험지를 바치고(제출하고) 밖에 나온 나는 같은 학교에서 온 동무를 만나 수학문제들을 정확히 풀었는 지 확인해 보았다. 8개의 문제 중 2개를 틀리게 풀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문제를 모두 정확히 푼 수험생들은 들뜬 모습들이었고 그렇지 못한수험생들은 매우 상심해 했다.

다음 시험은 물리 과목이었는데 나는 제시된 문제들을 비교적 잘 풀어냈다. 대학 정문을 나서던 나는 아들의 입학시험이 걱정되어 찾아온 어머니를 만났다. 대학정문은 수험생들의 부모들, 형제들이 수 많이 모여 자기 자식, 형제들을 찾고 부르느라 한동안 혼잡을 이뤘다.

나는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수험생으로서의 고뇌의 나날을 체험했다.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났을 때 나는 무엇인가 큰 짐을 벗어놓은 듯한 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만약 대학입학이 실패하는 경우 졸업 후 진로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드디어 두려우면서도 기다리던 대학입학자 명단이 게시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게시판 앞에는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수 많이 모여 붐비고 있었다.

이때 "철현아, 여기 있다"라는 동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처럼 바라고 꿈꾸어왔던 소원이 이뤄졌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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